2020년 9월 23일 수요예배 순서 | 신 앙 고 백 | --------------- 사도신경 -------------- | 다 같 이 | 찬 송 | ----------------- 251장 ---------------- | 다 같 이 | 기 도 | -------------------------------------- | 가정대표자 | 성 경 봉 독 | - 마태복음 11장 25~30절(신약18쪽) - | 인 도 자 | 설 교 | ----------- 영혼의 참 자유는? ----------- | 가정대표자 | 찬 송 | ----------------- 429장 ----------------- | 다 같 이 | 주 기 도 문 | ----------------------------------------- | 다 같 이 |
Ⅰ. 서론 – 인간의 몸, 정신, 영혼의 문제는? 현대인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스트레스입니다. 경쟁에서 오는 압박,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서 오는 압박, 현실에 처한 다양한 문제들 또는 자신의 삶에 대한 무기력함 등 다양한 이유로 스트레스가 찾아옵니다.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여행, 스포츠활동, 공연및 영행 관람, 동호회 활동 등등 다양한 여가활동을 통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합니다. 현대인들은 야근을 하여 월급을 더 많이 받는 것보다도 이제는 삶의 여유를 누리고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합니다. 경제적 상황은 더 좋아졌고, 월급도 더 많이 받게 되었고, 운동과 여가활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줄이려고 하지만 실패합니다. 오히려 정신적인 문제는 더 많이 발생하여서 불면증과 우울증(코로나 우울)도 더 늘어나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내적인 영혼이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가장 근본에 속하는 영혼이 공허한데, 아무리 육적인 것으로 채워도 인간은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아픈데, 육신이 아무리 평안하고 레저 활동을 많이 해도 인간은 아플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근본문제, 즉 영혼의 쉼과 안식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영혼의 참 자유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지를 통해서 더 나은 우리의 신앙생활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Ⅱ. 본론 – 본문속으로 1. 본문에서 규정한 인간의 정체성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 인생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예수님이 인간을 향해 내린 진단입니다. 인간이 무엇인가? 인생이 무엇인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고 있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어디서부터 시작이 되었을까요? 에덴동산까지 올라갑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하와에게 이렇게 형벌을 내리십니다. (창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이 여자에게 내린 형벌은 임신하는 고통, 수고하고 자식을 낳는 것 이였습니다. 즉 자식을 낳은 해산의 고통이 아니라, 수고하면서 자식을 낳는 형벌인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아담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3: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즉 남자에게는 평생에 수고하여야 먹고 살 수 있는 형벌을 주었습니다. 수고하고 일하는 것(노동)은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도 있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수고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하고 범죄 한 다음에 인간이 하는 수고(노동, 일)는 괴로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조상 아담의 죄로 인해 인간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것은 원죄적 결과였습니다. 2.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에게 어떻게 말씀하실까요? (28절b)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수고하는 모든 자들에게 “내게로 오라. 다 내게로 오라” 예수님께서 요청하고 계십니다. “교회로 오라. 기독교라는 종교로 오라” 하지 않고 예수님 자신에게 오라고 하십니다. 인생의 진정한 문제인 죄의 문제, 고통의 문제, 수고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왜요? 천지와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로 예수님 앞으로 나아갔는가? 혹시 교회에 나온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는가? 정말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는가? 나는 오늘도 주님을 그렇게 만나고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은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했을까요? 그들은 진정으로 메시아이신 예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율법과 종교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라고 할 때 조건을 달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을 구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는 누구나 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앞으로 인생의 짐을 가지고 나아가기만 하는 단순한 믿음만 요구하셨습니다. 3. 무거운 짐을 어떻게 하면 벗을 수 있을까요? (29~30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인생의 무거운 짐을 벗는 비결에 대해서 예수님은 ‘내게 와서 배우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와서 배우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원을 우리의 삶에서 누리며 사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훨씬 어렵습니다. 지속적으로 삶에서 구원의 감격과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서는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훈련은 곧 배움에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멍에(헬, ζυγόν)는 두개의 물건을 짝지어 합하여 쓰는 농기구를 말합니다. 이것은 농부가 소에게 멍에를 매어 밭을 갈고자 할 때 쓰는 물건입니다. 두 마리의 소를 하나의 멍에로 연결하면, 두 마리 가운데 힘이 센 한 마리의 소가 리더가 되어서 밭을 갈게 되는데 힘이 약한 소는 힘이 강한 소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내 멍에는 쉽다”는 말은 좀 더 정확하게는〈잘 맞는다. 딱 들어맞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져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신다면, 그 분과 함께 지는 멍에는 우리에게도 잘 들어맞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멍에를 져 주신다면,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은 가볍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의 이유는 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모든 권세와 능력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대신 수고로운 인생의 짐을 대신 져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4. 결론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55살이 되어서야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회심하게 되는데 그때 〈인생론〉이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내 인생의 55년 동안, 최초의 시절 15년을 빼고는 나는 안식 없이 살아왔다. 내가 18살 때 친구가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에 넘어가 수많은 시간을 방황했다. 종교를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있어서 종교는 속박 그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 나이 55살, 내 스스로 버린 어머니 품 같던 신앙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종교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얻었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나에게 어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있습니까? 우리는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짐과 수고로움을 다 질 수가 없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내 가족이 아플 때, 나의 계획이 틀어질 때, 아무리 노력해도 내 뜻대로 안 될 때, 코로나와 같은 불가항력적인 문제 등......, 우리는 인생의 수많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다가 넘어지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이 그 짐을 대신 짊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님이 지고 있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예수님 앞에 가져와 내려놓으십시오. 하늘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받으신 예수님이 내 짐을 대신 져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 짐을 대신 맡아 주실 것을 믿는 어린아이와 같은 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가져 오십시오. 거기에 성도님의 모든 인생의 문제에 답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