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도행전 9장 36-43절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많이 나옵니다. 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다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9장 36-43절 말씀을 통해 참 그리스도인, 참 제자는 누구인지 함께 깨닫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첫째, 다비다는 여제자였습니다. 욥바라는 지역에 다비다라는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다비다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다비다가 살아 생전 얼마나 많은 구제를 했는지 36절에 ‘심히 많더니’라고 표현했습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선한 일들과 구제들이 계속 가득해 있었다’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사람들을 돕는데 헌신적이었던 사람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성경에서 다비다를 ‘여제자’라고 부르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신약에서 여성을 향하여 ‘제자’라고 부른 사람은 다비다가 처음입니다. 다비다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를 ‘제자’라고 부르는 말로써 그녀가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비다는 그저 심성이 착해서 사람들을 돕는데 힘썼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착한 행실을 함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살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비다는 이 시대에 제자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가 아닌, 그녀는 제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자이기 전에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함이 마땅합니다. 목사, 전도사, 장로, 권사, 집사이기 전에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무엇이라 규정하기 전에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둘째, 예수님처럼 해야합니다. 38절에 다비다가 죽은 후 사람들은 베드로가 근처에 있음을 알고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 베드로를 청합니다. 베드로를 청한 이유가 무엇이알까요? 사람들이 사랑하는 다비다를 베드로가 살려주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요청에 응하여 그들과 함께 욥바로 가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의 행동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전까지 베드로는 사람을 살려본 일이 없었습니다.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한 적은 있어도(행 3:6-7) 사람을 살려본 일이 없던 베드로였습니다. 혹시나 ‘베드로가 기도했는데도 다비다를 살리지 못했다’라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그의 사역은 힘들어질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그런 것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의 요청에 바로 길에 나섰습니다. 베드로가 이와 같이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와 같이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아무것도 재지 않고, 예수님께서 그리하셨듯이 자신도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나아간 것입니다. 사랑하는 한빛의 가족 여러분,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심으로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내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다비다가 누워있는 다락방에 도착한 베드로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냈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딸을 다시 일으키실 때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셨습니다(마 9:25; 막 5:40). 베드로가 보고 배운 것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예수님처럼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많은 방법론들이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를 말하는 사람들도 코로나 이후 준비해야 한다며 많은 대안들을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면 사람이 모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면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처럼 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 한빛교회 성도들은 이 시대에 예수님의 제자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때론 말씀이 거칠고 세련되지 못하다 할지라도 묵묵히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셋째, 몸을 돌이켜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후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40절에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라는 말씀을 다시 보면, 그는 기도하기 전에는 시체를 보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워있는 다비다를 보고 기도한 것이 아니라면 그는 어디를 향하여 있었을까요? 그는 누워있는 다비다가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그는 다비다를 향하여 몸을 돌렸습니다. 우리는 지금 매우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제 끝날 것 같았던 코로나가 다시 확산되고, 2차, 3차 유행까지 우려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또한 자연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고 좌절과 낙심 속에 삶에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우리의 시선을 돌이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의지적으로 우리의 몸을 돌이켜 더욱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이 힘든 현실에 매몰되어 하나님을 보지 못하면 계속해서 절망과 우울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이 시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힘들고 좌절스러운 순간에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역시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있었지만 예수님 한분만 바라보며 힘을 냈던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의 제자로 부름받았다면, 이 때에 그리스도인으로 부름받았다면 우리도 힘들고 어려워도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한빛의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그들의 믿음과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증거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사람들은 신이 어딨냐며,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며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묵묵히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말씀을 살아냈습니다. 우리 한빛의 성도들 역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 제자로 살길 소망합니다. 이 힘들고 어려운 역경의 때를 세상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 말씀으로 이겨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