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찬양

제목2020년 7월 8일 수요예배말씀2023-02-28 10:24
작성자 Level 10

 

2020년 7월 7일 수요예배

신 앙 고 백

‥‥​‥​‥‥‥​‥‥‥사도신경‥‥‥‥​‥​‥

다 같 이

찬 송

​‥‥‥​‥‥ 251‥‥‥

다같이

기도

‥‥‥‥‥‥‥‥‥‥‥‥‥‥

가정대표자

성경봉독

​‥누가복음 8장 40-56절(신약 106쪽)

인도자

설교

​‥의 옷자락만 잡고섬기게 하옵소서

가정대표자

찬송

‥‥​‥​‥‥‥315‥‥‥

다 같 이

주기도문

‥‥‥‥‥‥‥‥‥‥‥‥

다 같 이

 

제목주의 옷자락만 잡고섬기게 하옵소서.

 

서론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뿐 아니라 영적인 상처를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어떤 형태로든지 다 상처를 붙들고 살아갑니다그 상처의 깊이와 내용과 상황은 다를지라도 그 상처속에서 오늘을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8장은 마치 파노라마처럼 다양한 예수님의 비유와 기적이 나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2가지 사건이 나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기 위해서 가는 도중에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한 한 여인이 고침 받는 모습이 나옵니다그 후 야이로의 딸을 예수님이 고쳐 줍니다.

이 두 가지 치유의 기적 사건은 상당한 유사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적인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의 관심이 어디에 있고어떻게 치료 받았는지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돌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신앙의 본질은 육체의 치유가 아니라영혼의 치유에 있음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소중한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론

1. 두 사건의 공통점

1) 두 사건 모두 12 라는 숫자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12살이었습니다. 12살은 유아기와 청소년기를 넘어 성년기로 넘어가는 중요한 시점이기도 합니다혈루증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의 고통 속에 살았습니다.

성경에서 12라는 숫자는 완전함많은 수를 뜻하는데 열두 지파열두 제자열두 사도열두 영 등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12라는 숫자가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하면야이로의 딸이 죽음에서 건짐을 받게 되고,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 고침을 받는다는 하나님이 뜻이 그 안에 숨어 있습니다.

 

2) 두 사건 모두 여인이 등장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여성은 사람의 숫자에 들지 못할 정도로 매우 천대받았던 시대였습니다.

이 두 여인은 당시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고무관심의 대상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특별하게 관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3) 두 사람 모두 최후의 방법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야이로는 회당장이었습니다.

회당에서 예배와 예식을 주관하고강론과 자녀들이 신앙교육을 했고 심지어 재판의 장소이기도 했는데회당의 건물을 책임지고 있는 직책이었습니다.

또한 회당장은 매우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고귀족이었으며존경받는 엘리트였습니다.

이런 회당장이 나이 어린 갈릴리 촌사람 예수라는 청년을 찾아와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어가는 딸을 보면서 자존심도 모든 지위도 쓸데없다는 것을 알고 체면 불구하고 예수님을 찾아갔습니다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 집에 오셔서 자기 딸을 살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고 치료해 보았지만 고칠 수 없어서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점입니다.

 

보십시오또한 열두 해 혈루증으로 고통 받는 이 여인의 고통은 얼마나 컸을까요?

혈루증은 오늘날 자궁암과 같은 부인병이었습니다.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는 병으로 수치심이 매우 컸을 뿐 아니라구약의 율법에는 부정한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예배에도 참여할 수 없었고 아무도 가까이 하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고립된 삶을 살았습니다오랜 병으로 몸도 지치고 물질도 많이 허비하였습니다친구도 이웃도 모두 떠나간 외로움과 영혼의 곤고함으로 가득하였던 그 때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온 것입니다.

12년 동안의 긴 고통이 이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방법과 이유는 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물질적인 어려움 때문에어떤 분들은 남편 때문에자녀 때문에 가족들 때문에 예수님을 찾기도 합니다어떤 분은 질병으로 인한 삶의 고통으로 예수님을 찾기도 하고야이로처럼 죽음 앞에 직면해서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만나는 상황은 다 다를지라도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이 복입니다우리를 괴롭혔던 고통도 고난도 질병도 눈물도 아픔도 심지어 죽음마저도 예수님께 가지고 나오면 그것이 복이 되는 것입니다.

 

4) 두 사람의 믿음은 불완전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사용하셨고주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성장시키셨습니다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은 군중들의 틈 속에서 예수님의 겉옷자락을 살짝 만졌습니다.

예수님의 옷 가만 만져도 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대단한 믿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치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것이 거룩한 성물이 되어서 나를 고칠 수 있다는 미신적이고 불완전한 믿음이기도 합니다.

 

누가 내 몸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그녀의 낮은 단계의 믿음을 귀한 믿음으로 끌어 올려 주시기 위해서 그 여인을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손을 댔다는 이 말은 살짝 스쳐 지나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굳게 붙잡은 것을 말합니다. “주님저는 이 질병에서 꼭 나아야 돼요저는 주님밖에 소망이 없어요저를 고쳐 주실 분은 예수님뿐이에요.” 그렇게 간절히 붙잡은 것을 말합니다.

나의 옷이 아니라 나를 붙잡으라나의 말씀을 붙잡으라는 말입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 역시 불완전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집으로 가는 도중에 딸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야이로는 소망도 다 끊어졌습니다예수님이 가셔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실 예수님은 믿기 어려운 말씀을 지금 하고 있는 것입니다이미 죽었는데이제 끝이 났는데 예수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때 성경은 야이로의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기록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예 주님 저는 믿습니다주님이시라면 제 죽은 딸을 살려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확실하고 고백하지 않고 자기의 모든 판단을 유보하고 멈추어 있는 불완전한 믿음이었습니다.

 

결론

모든 사람들이 야이로의 딸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며 통곡했지만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울지 말라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인간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죽었다고 했고하나님의 관점에서 예수님은 잔다고 하십니다똑같은 사실에 대해서 다르게 말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요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가져야 할 믿음입니다.

나는 지금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인가아니면 잔다고 고백하는 사람인가?

나는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인가아니면 여전히 주님 안에는 소망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인가?

나는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인가아니면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말하는 사람인가?

 

이 세상의 사람들을 두 종류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온도계와 같은 사람이요다른 사람은 온도조절계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온도계와 같은 사람은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표현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사랑이 없으면 교회가 왜 이렇게 냉냉해?”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온도조절계와 같은 사람은 교회가 냉냉하면 내가 어떻게 하면 이 교회를 따뜻하게 만들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의 부족한 모습이 보이면 다른 성도님의 허물이 보이면 그것으로 불평하지 않거나 비판하지 않고 그것을 채우려고 하고 가려줄려고 합니다.

교회는 온도 조절계와 같은 사람이 많을 때 부흥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고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에게도 예수님과 같은 믿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똑같은 말이지만, “죽는 것이 아니라잔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도님의 부족한 면이 보이거나목회자들의 부족함과 단점이나 약점이 보이거든 비난하지 말고 저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성도님과 목사님을 도와서우리 교회를 잘 섬기라고 하신 것이야내가 저것을 해야지!” 이런 온도조절계와 같은 믿음과 자세로 섬긴다면 우리 교회는 가장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또한 12년 동안 혈루증의 고통 속에 살았던 그 여인을 생각하며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는 그 심령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의 옷자락 만지며주의 두 발을 씻기며주님 그 발에 입 맞추며나의 왕관을 놓으리.”

세상의 옷자락사람의 옷자락내 삶에 일어난 고난의 옷자락 만지며 그것을 붙들면우리는 넘어집니다낙심하고 절망합니다.

 

그러나 주님 옷자락 만지는 심정으로 주님만을 붙들면 아픔도 눈물도 억울함도 원통함도 결국에는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형식이 아니라 내용 주님을 붙드는 것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본질이 되어야 합니다.

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님께 내가 쓰고 있는 왕관을 벗어서 주님께 드리며 그 분께 맡겨 버립시다.

주님주님 옷자락만 붙잡고 주님 따라 가게 하옵소서주님 섬기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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