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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갑절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Ⅰ. 서론 오늘날 코로나19로 그 어느때보다, 가정도 교회도 사회도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복음전도의 길은 막혀 버렸고 겨우 내 신앙 지키기도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점점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감동, 기도의 권세 예배의 감격등등 이런 말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는 더 신앙적 언어들을 선포해야 합니다. 세상이 더 험악해질수록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성령의 감동을 선포해야 합니다. 전도하기가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 많이 기대해야 합니다. 내 삶이 힘들고, 경제가 어려울수록 우리는 기도의 권세의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를 믿지만, 예수 이름의 권세, 기도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 복음의 파워, 성령의 권능을 그 어느때보다 사모해야 합니다. 이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엘리사가 자기의 위대한 스승에게 구했던 오직 한 가지 성령의 능력이 갑절이나 임하기를 원했던 그 기도를 드려야 할 때입니다. Ⅱ. 본론 1. 엘리야, 엘리사 시대 우리 시대가 어렵다고 하지만 엘리야, 엘리사 선지자가 살았던 그 시대 역시 참 어렵고 혼란스런 시대였습니다. 엘리야 시대 때는 아합 왕과 왕비 이세벨이 통치한 때입니다. 아합과 이세벨은 이스라엘 땅을 온갖 우상으로 물들인 장본인들이고,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이방신을 섬기도록 했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있는 대로 잡아 죽였습니다. 아합왕은 물질의 탐욕이 가득하여 나봇을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억지로 빼앗습니다. 권력을 이용해서 물질적 탐욕을 채우려고 했던 시대가 그때였습니다. 엘리사 시대에는 백성들은 영적 지도자를 존경할 줄 몰랐고, 이성적 신앙생활로 인해 영성은 모두 메말라 버린 영적으로 캄캄한 어두운 시대였습니다. 2. 오늘날 우리의 시대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21세기 4차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코로나의 위협이 온 세계와 우리 나라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은 연일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국가기반이 흔들릴 처지입니다. 국내적으로 부동산정책이 혼선을 거듭할수록 서민들의 시름소리가 커져만 갑니다. 점점 경제는 불황의 늪으로 가고 있고, 청년실업과 가장들이 직장을 잃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삶은 더 버거워져 갑니다. 사회적으로는 강력 범죄의 연령대가 점점 낮아져가고 있고, 청소년들의 범죄대상이 아닌 주범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사회의 등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종교도 부패하고 신뢰와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거역의 영에 휩싸여 영적권위가 무시되고, 신령한 세계에 대해 무지하며,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을 잃어 버려, 과학은 발달하지만 영성은 죽어 버렸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참다운 권세를 누리지 못한 시대가 지금의 우리들이 처한 시대입니다. 3. 엘리사가 성령의 갑절의 은혜를 구하는 이유 시대가 어렵고 캄캄할 때 엘리사는 자기의 위대한 스승이 떠날 때, 오직 한가지만을 구했습니다. (왕하2:9)“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엘리사가 갑절의 성령의 역사를 구하고 있는 것은, 스승이 가진 능력의 두 배라는 의미도 아니고, 단순한 욕심도 아닙니다. 엘리사의 이 말은 모세율법에 있는 상속법에 근거한 것입니다. 장자는 아버지의 유산 중에서 다른 자녀들보다 두 몫을 유산으로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지금 스승 엘리야선지자가 떠난 후에도 하나님의 사역을 계속해서 해 나갈 수 있도록, 자신을 영적인 장자로 인정해 달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어두운 시대에 영적인 장자가 되어서 이 시대를 밝히고 싶다는 거룩한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스승 엘리야가 심판의 선지자, 불의 선지자였다고 한다면, 엘리사는 치료의 선지자, 위로의 선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아버지같이 호령하는 선지자였다고 하면, 엘리사는 어머니같이 따뜻한 마음으로 품어주는 선지자라 할 수 있습니다. 치료하는 일은 부수고 깨뜨리는 일보다 어렵습니다. 위로하는 일은 심판하는 일보다 더 어렵습니다. 엘리사에게 갑절의 영감, 성령의 능력이 갑절이나 필요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더 어려운 시대가 도래 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역은 더 능력 있게 펼쳐져야 했기에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위로와 치료의 선지자가 구한 것은 갑절의 성령의 은혜였습니다. 4. 스승 엘리야를 따라가는 엘리사 엘리야는 승천 사건을 앞두고 길갈, 벧엘, 여리고, 요단으로 계속해서 장소를 옮겨갑니다. 그때마다 엘리사는 엄마의 손을 놓치면 안된다는 어린아이처럼 스승을 따라갑니다. 장소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길갈의 뜻은 “굴러간다”는 뜻인데, 할례를 행함으로 “애굽의 수치가 굴러갔다. 더러운 죄의 굴레가 굴러갔다. 죄악이 굴러갔다.”는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길갈 속에 담긴 의미는, “너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기 위하여 회개할 수 있느냐? 너희는 너의 몸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드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벧엘은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외삼촌 집으로 도망갈 때 하룻밤을 지냈던 곳입니다. 그 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납니다. 벧엘의 의미는 “너의 예배, 너의 기도, 너의 찬양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느냐?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음으로, 지금 여기가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 찬 곳임을 확신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무너뜨린 성읍이었다. “이 모든 것을 이루어가는 분이 하나님이구나. 이 전쟁이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이구나. 그러니 너는 소리를 질러라. 믿음으로 외쳐라.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라.” 여리고는 이 음성을 우리들에게 들려줍니다. 마침내 요단강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불말과 불병거를 타고, 회오리바람과 함께 하늘로 승천했습니다. 5. 성령의 갑절의 능력을 받는 비결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를 끝까지 따라감으로 스승의 겉옷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갑절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엘리사의 행동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엘리야의 곁을 끝까지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머물러라!”고 해도 엘리사는 엘리야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내 스승을 놓치지 않겠다는 결단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을 놓치지 않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성령이 역사하는 자리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능력이 임하는 자리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이런 결단과 믿음이 있을 때 갑절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Ⅲ. 결론 우리가 구해야 할 것 역시, 엘리사가 구했던 것과 동일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매우 어렵고 앞으로는 더 어려워 질 것입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은, 물질도, 재물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의 갑절의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믿는자답게 사는 것이 어렵기에 우리는 더 갑절의 능력을 구해야 하고. 교회가 어렵고, 복음 전파가 더 어렵기에, 우리는 갑절의 능력을 구해서,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녹이고, 복음이 전파되고, 복음이 전파될 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도록 우리는 구하고 구해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암담할수록, 캄캄할수록 배나 더 헌신하는 사람들, 배나 더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배나 주님 앞에 쓰임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이 세상을 이길 갑절의 성령의 은혜를 주시옵소서. 내가 주님의 사명을 이땅 가운데서 이룰수 있도록 갑절의 영감을 주시옵소서.” |